상세정보
사랑에 빠진 레이철

사랑에 빠진 레이철

저자
팻 머피 (지은이), 유소영 (옮긴이)
출판사
허블
출판일
2023-04-26
등록일
2023-05-15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3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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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네뷸러상, 필립 K. 딕상, 성운상(세이운상), 시어도어 스터전상 수상 작가
아더와이즈상 (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창설자
페미니즘 SF 계보의 압도적인 시작, 팻 머피

“현실의 억압과 폭력으로는 지우지 못할 저항과 자유의 힘”_(SF평론가 심완선)
‘글 쓰는 여자’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여자들이 SF를 망치는 존재라면 우리는 기꺼이 SF를 망쳐주겠다!


1976년, 가장 ‘남성적인’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아 온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실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SF 업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후에 ’팁트리 쇼크‘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이 사건은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왜 그렇게 혼란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을까? 또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왜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라는 본명 대신 지극히 남성적인 이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사용해야 했을까? 무엇이 ‘글 쓰는 여자’들을 그렇게 두렵고 충격적인 존재로 만드는가?
SF계에서 ’남류작가‘들이 득세하던 1970년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진짜 SF를 쓰지 않아, 가짜 SF나 판타지만 쓰지. 여자들이 SF를 망치고 있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창설자이자 SF 작가인 팻 머피는 그런 바보 같은 말들을 단호하게 정리한다. “그 말들은 지겹고 틀렸다”라고. 그리고 네뷸러상, 필립 K. 딕상, 성운상(세이운상), 세계환상문학상, 시어도어 스터전 기념상 등 유수의 상을 받으며 작품으로서 또 한 번 자신의 대답을 증명해낸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기리며 만들어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현 아더와이즈상)은 성평등과 젠더에 관한 시야를 넓히는 SF 및 판타지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다. 지금까지 어슐러 르 귄, 조애나 러스, 일본의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 등 쟁쟁한 작가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만약 팻 머피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창설자가 아니었다면 제1회 수상의 영광은 팻 머피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소설들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다. 표제작이자 네뷸러상을 수상한 「사랑에 빠진 레이철」은 10대 소녀의 뇌를 이식받은 암컷 침팬지의 성과 사랑을 솔직하고 충격적으로 묘사했으며, 두 번째 순서로 수록된 「채소 마누라」는 국내에서도 이미 페미니즘 SF로 알려진 작품으로 여성(채소 아내)을 ’구매‘해 심은 후 성적으로 착취하는 폭력적인 농부 핀과 억압을 딛고 마침내 땅 위에 우뚝 선 ’채소 아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수록작 「숲속의 여자들」 역시 매 맞는 아내에 대한 묘사와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이 신랄하게 이어진다.
외국문학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SF 추진체, 보석 같은 외국 고전 SF를 재발견하여 독자에게 큐레이션하는 허블의 ’워프‘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으로 팻 머피의 『사랑에 빠진 레이철』이 출간되었다. 한국판 특별 선집 『사랑에 빠진 레이철』에는 과거 국내 앤솔러지에 소개된 「오렌지꽃이 피는 시간」, 「사랑에 빠진 레이철」, 「채소 마누라」,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섹스」 외에도 16편의 국내 미발표작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허블은 『사랑에 빠진 레이철』을 통해, 그리고 팻 머피를 통해 페미니즘 SF의 계보를 새롭게 쓰고자 한다.

“착한 여자는 얌전히 천국에 가지만
팻 머피의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 겸 극작가 메이 웨스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Good girls go to heaven, but bad girls go everywhere’ 해석하자면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는 뜻이다. 기존의 가부장제를 답습하며 억압당하는 착한 여자들의 상상력이 가정과 천국에만 머문다면 팻 머피의 SF적인 상상력은 여자들을 ’원하는 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곳이 설령 가정과 천국처럼 안온하고 행복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팻 머피의 여자들은 행복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행복 대신 자기 자신을 찾는다. ‘착한 여자’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여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연상시키는 「숲속의 여자들」에서 주인공은 꿈에 그리던 안락한 가정을 꾸리지만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하고, 그때마다 집 뒤뜰의 참나무숲으로 피신한다. 참나무숲에서 ’참나무 여자들‘의 환각을 종종 목격한 주인공은 남편의 가정폭력이 극에 달하자 마침내 나무 위로 올라가 환각 그 자체가 되어 자신을 찾는 남편을 비웃는다.
「사랑에 빠진 레이철」의 레이철은 10대 소녀의 뇌를 이식받아 의사소통이 가능한 침팬지다.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침팬지(이자 10대 소녀의 마음을 가진) 레이철은 유인원 연구 센터에 끌려가 처음으로 성과 사랑에 눈뜨며 소녀와 짐승 사이에서 자아의 혼란을 겪는다. 마침내 레이철은 소설 후반부에서 자신의 안락한 집인 목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 수컷 침팬지의 손을 잡고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사막을 향해 기꺼이 걸음을 옮긴다. 소녀로서의 자신과 짐승으로서의 자신, 그 모두를 받아들인 레이철은 마침내 ‘괴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어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채소 마누라」의 채소 마누라 역시 자신을 땅에 심어놓고 성적으로 학대하던 농부 남편을 죽이고 똑같이 땅에 묻어버리며 떠오르는 태양과 눈을 마주한다. 「진흙의 악마」에서 돌로레스는 진흙으로 악마 인형을 만들고 파는 가난한 여성이다. 악마 인형을 판 돈으로 술주정뱅이 남편과 어린 딸을 부양하지만,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자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인 악마를 스스로 부숴버린다. 어린 시절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영화배우 아버지의 무관심에 상처받으며 아버지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 「TV 속의 죽은 남자들」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TV를 마침내 뒤뜰에 내다 버리며 TV 위에 불을 지른다.
땅에 묻어버리고, 부수고, 불을 지르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옥죄고 있던 억압의 족쇄를 끊어내고 스스로 우뚝 서는 여자들. 구원은 타인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팻 머피의 SF적 상상력은, 수동적이었던 여자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든다.

익숙한 방 안에 한 가닥 떨어져 있는 낯선 머리카락
등 뒤를 스치는 사소한 기척,
내 안의 불안은 그런 것들을 먹고 자란다


팻 머피의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팻 머피의 몇몇 소설들은 ’괴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사건은 일어날 듯 말 듯 불길하고 암시적인 징조로만 존재한다.
「파도가 다정하게 나를 부르네」에서 바닷가 옆 오두막에 사는 케이트는 어느 날 바다에 쓸려온 물범의 사체를 보고 실키족(물범족)을 죽이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유성은 우주에서 날아온 돌멩이다」에서 중년 여성 젱킨스는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을 목격한 후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변화(방 안에 낯선 색깔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거나, 물건의 위치가 묘하게 달라져 있다거나, 저절로 집 안의 불이 켜진다거나, 자잘한 불운이 이어지는 등)를 겪고 초조해한다. 「뒤돌아보지 말라」의 주인공 리즈 역시 자신이 떠난 자리에서 자신을 하나하나 대신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보며 조바심을 느낀다.
때로 우리 모두가 경험하지만, 말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남들은 ’네가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팻 머피는 그들의 복잡한 마음의 결에 섬세하게 주목한다. 특별히 큰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아도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팻 머피는 인물의 불안과 사소한 불편함, 조바심 같은 감정들을 정확하게 묘파해낸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시간여행자, 어류인간, 외계인, 네안데르탈인
일상 속에는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뒷문이 있다


팬데믹으로 점령당해 봉쇄된 도시, 식료품과 물자가 점점 떨어져 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구경하기도 힘든 생오렌지 한 바구니를 건네준다면? 혹시라도 그녀가 시간여행자는 아닐지 의심해보라. 팻 머피의 소설 속 외계인들은 저 멀리 우주가 아닌 우리 일상 속 곳곳에 존재한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의 작가 케이트 윌헬름이 쓴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팻 머피의 소설에는 ‘외계인, 타자를 향한, 흔해 빠진 혐오가 없다. 대신 공감과 포용이 평화를 부르고, 공허를 채우고, 심지어 구원으로 나아간다.’
평범한 남자와 시간을 여행하는 여자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오렌지꽃이 피는 시간」, 손에서 물갈퀴가 자라나는 어류 인간 모리스과 해양생물학자 닉의 우정을 다룬 「군도에서」, 멕시코에서 해먹을 파는 바람둥이 상인 그레고리오가 우연히 만난 관광객 여성이 실은 지구에 낙오된 외계인이었다는 내용의 「머나먼 곳의 무더운 여름밤」, 호텔에서 노숙하는 부랑자가 길에 버려진 폐품에서 외계인 우주선 부품을 발견해 우주선을 재조립한다는 내용의 「도시 빈민가의 재활용 전략」, 시간여행을 통해 현재 세계로 소환된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의 이야기 「곰의 손길」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종류의 이방인들이 팻 머피의 소설에 등장한다. 그리고 팻 머피는 타자, 이방인을 향한 혐오 대신 공감과 이해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팻 머피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그는 아직도 ‘여전히 나는 침대 밑 마녀의 존재를, 언젠가 깨진 노면 틈에서 찾아내고픈 마술 동전의 가치를 믿는다.’라고 말한다. 팻 머피의 소설들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뒷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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